"네가 지금까지 번민했던 일은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정말 어리석고 시시한 일처럼 느껴지는구나."
친구는 너무나도 행복해 보이는 다카시와 병 속 캡슐들의 해후에 질투가 이는 것처럼 말했다.
"무릇 모든 번민이라는 게 일단 해결되고 나면 어리석고 시시하게 느껴지는 것 아닌가요? 형이 일부러 귀국해서 요양소에 들어가는 일만 해도 형 머릿속에서 헝클어진 매듭이 풀리고 나면 그저 어리석고 시시한 짓으로 기억되고 끝나지 않겠어요?"
다카시가 반발하듯 말했다.
"풀리기만 한다면야······. 하지만 풀리지 않는다면 그 어리석고 시시한 일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되는 거지."
올해 읽은 책 중 아마 완독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 책인 것 같다. 물론 최근 바쁜 일정에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했던 탓도 있지만, 작품의 내용 자체가 배경지식이 부족한 나에게는 다소 어렵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상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작가의 표현력이 정말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으며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데 오래 걸렸던 것 같기도 하다.
"형수님, 휘파람 불 줄 알아요?"
다카시가 진지하게 물었다.
"불 줄 알아요."
아내가 경계하면서 대답했다.
"밤이 된 다음에 휘파람을 불면 골짜기 사람들은 진짜로 화를 내요. 형, 골짜기 마을의 그런 금기를 기억해?"
다카시는 지금 내 기분에 걸맞게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하지. 밤에 휘파람을 불면 숲에서 마귀가 나온다고 했어. 할머니는 조오소가베가 온다고 했지."
"그래? 나는 이번에 골짜기에 와보고 내가 너무나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어. 뭔가 한 가지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도 정확한 건지 아닌지 자신이 없어. 업루티드(uprooted)라는 말을 미국에서 종종 들었어. 그래서 나 자신의 뿌리를 확인해보려고 골짜기에 돌아왔는데, 결국 내 뿌리는 이미 오래 전에 완전히 뽑혀 나가 나는 뿌리 없는 풀이라고 느끼기 시작했어. 나야말로 업루티드야. 나는 이제 여기서 새로운 뿌리를 만들어야 하고, 당연히 그에 걸맞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껴. 어떤 행동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저 행동이 필요하다는 예감만이 강해지거든. 아무튼 태어난 장소에 돌아왔다고 해서 그곳에 자신의 뿌리가 온전히 묻혀 있지는 않아. 감상적인 얘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풀의 집은 남아있지 않았어, 형."
책을 다 읽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클라이맥스로 향하며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과 작품 초반에 흩어져 있던 복선들이 맞물리면서 더욱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이 작품이 사실 작가 자신의 상처를 다루고 있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나니, 작품 속 인물들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다.
"시코쿠로 향한 차가 어딘가 바닷가를 지나고 있을 때, 새벽이 밝아오자 다카는 '대체 인간에게는 아직 착한 구석이 남아 있을까?' 하고 저에게 묻더니, '그래, 남아 있어' 하고 자기가 대답을 했어요. 그 이유는 인간이 아직 멀리 아프리카의 초원에 나가 코끼리를 잡을 뿐 아니라, 바다를 건너 코끼리를 수송해 가지고 돌아와 동물원에서 기르는 일을 하기 때문이래요. 다카는 어릴 때, 만약 부자가 되면 자기도 개인적으로 코끼리를 한 마리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이 곳간채에 우리를 만들어놓고 코끼리를 길러, 골짜기 마을 어디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건 올려다보면 바로 코끼리가 보일 수 있도록 돌담 아래 높은 나무는 모두 베어 버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다소 어둡고 불쾌하게 느껴지는 묘사도 있어 읽는 동안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책을 다 읽은 감상은 상처 그 자체를 이야기하기보다는 그 상처를 어떻게 마주하고 치유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언젠가 어딘가에 있을 '기대'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